2010년 1월 30일 토요일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 D. 샐린저 91세로 타계하다


국내 출시된 샐린저 책들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1951)"의 저자 제롬 데이빗 샐린저  (1919~2010)가 28일 노환으로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소설을 알게 된 건

중학생때 TV에서 본 뉴스 - 미국의 연쇄살인범들이나 희대의 살인마들이 바이블처럼 간직했던 책이란 내용 - 때문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보고 책 내용이 추리소설이나 살인과 관련된 내용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나중에 읽어봐야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그런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고 (우리가 "노인과 바다"나 세익스피스의 4대 비극 등을 너무 많이 들어 읽지 못하는 비슷한 이유^^)  쭉 그렇게 호기심을 간직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작년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느낌은 이랬습니다. ^^;;   "이게뭐야.. 이게 왜 이렇게 위대하다고 추앙을 받는 것이지?"

읽는 도중 수십 번을 중간에서 책장을 덮고 싶은 걸 참고 또 참아 끝까지 읽었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작가의 메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이 구절에서 말입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재미있게 노는 꼬마들  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는 거야,  ...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주인공 홀든은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방황하지만 여동생인 피비를 통해 어린이에게 이 세상을 구원할 희망과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그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명저에 선정되기도 했던 이 책은,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꾸준히 팔리고 있지만 작가의 극단적인 은둔생활과 더 이상의 유명세를 원치않았던 괴팍한 성격탓에 어떤 영화제작자도 영화로 제작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간간히 단편소설 몇 편을 발표하긴 했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위대함을 넘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소설을 읽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한번 읽어보세요...


희대의 살인마들이 그렇게 이 소설을 바이블처럼 가까이 했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화가 피었습니다.



며칠 전에 매화나무분재에 꽃봉우리가 맺혀있었습니다.

"곧 꽃이 피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오늘 물을 주러갔더니 꽃이 피었네요..

 

추운 겨울에 꽃이 피는 매화를 보니

말로만 듣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사군자의 으뜸 매화의  기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이 그렇게 매화를 아꼈나 봅니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꽃봉우리를 맺고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저도 2010년엔 어떤 어려움과 좌절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헤쳐나가

소원하는 것을 꼭 이루어야겠습니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러브스토리"의 작가 "에릭시걸"의 사망기사를 보며....

영화 "러브스토리" 포스터


에릭시걸의 사망기사



러브스토리의 원작자 에릭시걸이 17일 런던 자택에서 향년 72세의 나이로 숨졌다고 한다.
사인은  심장마비..
시걸은 약 30년동안 파킨스병과 싸워오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품을 집필해 왔다고 한다.
 
지금 세대들에겐 "에릭시걸"이나 "러브스토리"가 조금은 낯설지 모르지만
부모님 세대나 386세대인 저에겐 "라스트콘스트"와 함께 사랑의 바이블처럼 각인되어 있다.
 
 
"스물다섯에 죽은 그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그리고 비틀스를, 그리고 나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국의 명문부호 배리트가문의 아들이자 하버드대학생 올리버 배리트와
이탈리아 가난한 이민가정 출신으로 레드클리프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똑똑한 여성 제니의
지고 지순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올리버와 제니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을 결심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의 부딪친 올리버는
결국 제니와 결혼을 강행한다.  
빈곤한 가장이 된 부잣집 도련님 올리버.
그의 로스쿨 졸업을 위해 제니는 자신의 음악공부와 파리 유학을 포기한다.
고생 끝에 변호사가 되지만 제니가 악성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쇠약해져가는 제니를 보며 올리버는  자기 때문에 꿈도 포기하고 고생시킨 것같아
미안하다고 하는데 제니는 올리버에게 이야기 한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결코 미안하단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하고

결국 제니는 죽고 병실을 찾아온 올리버의 아버지는 올리버에게 뒤늦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올리버는 아버지에게 "사랑은 결코 미안하단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제니의 말을
그대로 건넨다.

이 작품은 물질주의 풍조가 만연했던 당시의 젊은 세대들에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참모습을 격조있게 그려 큰 감동을 주었던 소설이다

1970년엔 배우 라이언 오닐(Ryan O'Neal)과 알리 맥그로우(Ali MacGraw)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돼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에릭 시걸은 비교문학 박사로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대학에서 그리스라틴문학을 강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나이(33세)에 전세계 젊은이에게 마음으로 와 닿는 멋진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도 젊은이들이 물질주의 풍조에 빠져있다고 했는데
40년이 지난 2010년 지금의 젊은이들의 사랑법을 뒤돌아 보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2010년 우린 올리버와 제니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의 추억을 고이 간직한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20세기 고전이다.


삼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에릭 시걸 (1937 - 2010)
1937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재학시절에는 육상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 비극과 라틴 시 그리고 고대운동경기들에 관한 책들도 폭넓게 발간한 그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에서 강의를 했다.
1972년 76년 올림픽게임에서 그는 ABC TV와 파리의 RTL라디오 방송국의 실황중계 해설자를 맡기도 했다.
198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옥스퍼드의 울프슨 대학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문학편집자와 결혼한 사이엔 두 아이가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러브스토리>, <닥터스>, <클래스>,
<올리버스토리>,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 등의 작가이다.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난 이제 겨우 내 인생에서 42%만을 살았을 뿐이다

네이버 사진 동호회 디갤 출사때


힘들었던 2009년 .....


2009년을 뒤로 하고 2010년이 시작된지 벌써 16일째...


다시 태어났다는 심정으로 올해는 많은 일을 계속하고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술밥에


배가 부르기를 바라는 도둑넘 심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기본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나를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생활하자.

 

때때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조바심에 잠 못드는 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자.


"난 이제 단지 내 인생에서 42% 밖에 살지 않았어" 우하하하~~~